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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기는 너무 쉬웠다

내가 사춘기가 시작되고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될 무렵은 그닥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중학교의 첫 시험은 초등학교 때 공부방식으로 하다가 크게 낭패를 봤다. 책 한번 읽고 보면 100점 가까이 나오던 국어 과목이 70점 대기 나왔다. 나도 충격이고 어머니도 충격 이었나보다. 그리하여 국어 학원을 다녔고 공부방법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항상 1등만을 노래 불렀기 때문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1등을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매일 코피를 흘리며 공부를 했다. 정말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열정이 있었던 것 같다. 아직 순수하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러나 100, 98, 100… 이런 식으로 기쁨을 맛 보다가도 그리 달달 외웠건만 그간 좋아하고 즐기지 못했던 영어 과목에서 87점 정도가 나오며 승전보는 끝이 났다. 또 2등이다. . 초등학교 때 매번 올 100을 맞던 친구가 반에 있어 1문제만 틀리고도 2등을 했었는데, 살면서 1등을 해본 적이 없다. 콩라인이다. 이래서 내가 홍진호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도 매우 주목 받는 등수 향상에 부모님은 기뻐하였고 맛있는 것도 먹고 E마트에 가면 매번 사는 책을 샀는데 공부법 책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고통이 시작된다. 공부법 책에 나온 사람처럼 도저히 사는 것이 되지 않았다. 또 해보고 또 해봐도 그렇게 될 수가 없다. 나와 너무 다른 환경, 성장배경, 삶을 가진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점점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 나는 원망, 시기, 자책—온갖 부정적인 고통을 가진 사람이 되어갔고 방황했고, 아버지얘기 크게 두들겨 맞은 이후로 폐인이 되어 아침에도 잠, 밤에도 잠, 그런 비참한 생활을 이어갔다. 학창생활이 끝나고 성인이 되어서도 고통스러운 삶이었다. 사회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지만 롤러코스터 타듯 오르락 내리락 이었고 과거의 고통을 지울 수 없었다. 이곳에 명상을 하러 오면서도 의심, 두려움, 이것을 하고도 안 되면 어쩌나 하는 공포심이 들었다. 처음에는 명상이 잘 되었다. 과거를 잘 알고 수많은 시도와 책들을 읽으며 돌파해보려 했기 때문인지 버릴 것들이 명확 했고 술술 잘 버려졌다. 그러나 뿌리가 깊었던 것인지 다시 올라오는 수많은 감정의 사진들은 나를 다시 허상의 꿈 속으로 밀어 넣었고 다시 나는 과거의 허상의 마음들에 갇혔다. 그러나 나오기는 너무 쉬웠다. 마음을 버리는 처음 배운 명상으로 다시 시도하니 고통이 사라져 갔다. 202호의 동료들, 도우미 형들, 도움님들 그리고 여기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며 같이 걸어갔기에 얻어진 기적이었다. 더 이상 과거의 마음들은 나를 구속하지 않는다. 7박 8일의 캠프가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이 지나갔다. 나는 이제 빛을 안다. 그리고 바라볼 줄 안다. 나는 1~7과정을 모두 마치고 자유로운 빛이 되어 내가 받은 빛을 다른 이들에게도 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